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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방법론적 개인주의와 정치적 집단주의

빨간도란쓰

일반적으로 개인주의는 집단주의와 양극단에 놓인 개념-쌍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두 입장이 실은 하나의 흐름 위에 놓여 있지 않은가?


방법론적 개인주의

통념적으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개인주의적 관점에서는 사회와 사회의 여러 현상을 '개인에 대한 원자화된 표상'에 기반해 파악하려고 한다. 이 글에서는 정확히 이 통념적으로 정의된 개인주의를 다룬다. 사회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의 개인주의라는 뜻에서 '방법론적 개인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다.


개인에 대한 원자화된 표상

원자화된 표상이라 함은,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는 무-연고적 개인이 사회에 선행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개인 밖의 타자, 사회, 국가는 모두 자신의 존재에 근본적으로 적대적인 것inimical으로 상정된다. 법의 존재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고 표상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관점에서 타자는 존재를 구성하지 않는다. 오직 존재를 위협할 따름이다.


원자화된 개인과 사회계약론적 사회 이해

개인에 관한 위와 같은 전제 위에서 사회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일종의 사회계약론적 전략을 취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이 사회에 선행한다고 간주하기에 개인들이 모여 인위적으로 계약을 맺음으로써만 사회를 정당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개인들의 총합으로서의 사회, 국가, 그리고 그 총합을 조정하기 위한 법이 탄생한다. 법은 결국 서로간 적대적인 여러 개인들 간의 관계를 조율하는 또 하나의 절대적 '타자'로서 제시된다. 이것은 정확히 '자유'와 '개인'에 대한 개인주의적 전제에서 출발해 리바이어던이라는 강력한 주권-국가의 필요와 존재를 정당화하는 홉스 정치철학의 논증을 연상시킨다.


원자화된 개인과 보편주의적/합리주의적 관점

원자화된 개인은 사회에 선행한다고 여겨지므로, 어떠한 유전적/생물학적 특질을 제외하곤 모두 동질적인 존재로 간주된다. 즉, 인간 존재에 어떤 특정한 자연의nature로서의 본질/본성이 제시된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인간은 합리적이다"와 같은 선언적 규정들을 떠올려보라. 이러한 인간에 대한 이해에 기반해 구성적이며 공존 가능한 차이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두 하나의 합의된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는 합리주의적 환상이나 현재 자신이 보편적 진리의 담지자라는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명백하게 드러나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차이들은 곧바로 특정한 자연적 범주(인종, 성별, 폭력성, 악함)로 분류되어 본질적인 차이로 환원된다.


원자화된 개인과 반-정치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사회와 공동체가 개인의 개인-화individuation에 미치는 인과적 역할을 부정하기 때문에 사회가 개인을 바꾸어낼 수 있는 여지는 사라진다. 다시 말해, "사회는 없고 오직 개인만 있기"[각주:1] 때문에 사회적인 것은 온전히 상상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를 바꾸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용한 것이 된다.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접합·협상·반목·대화·조정·합의로서의 '정치'는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체화한 이들은 반-정치, 탈-정치를 지향한다. 이들은 정치적 이념을 본질적으로 오염된 것으로 파악하고 그에 기반한 의식적인 '정치적 행위'를 혐오한다.


반-정치의 정치적 귀결, 본질주의

허나 개인주의자들이 탈-정치를 주장한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로 정치의 영역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인간이 정치적 공간에 기입되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그렇다면 이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정치적 실천은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가? 정치 행위의 본질이 피아구분, 적과 나 사이의 전선을 긋는 행위에 있다는 슈미트의 논의를 따를 때, 방법론적 개인주의자는 어떠한 전선에서 싸우는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인간 이해는 공존 가능한 차이를 있는 그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차이를 다루더라도 그것은 환원된 본질로서만 이해된다. 그래서, 적대의 기준은 그 본질적 차이가 된다. 반-정치가 정치적 공간으로 기입될 때, 그것은 필히 본질주의로 흐른다.


본질주의와 집단주의

'본질적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허나 무엇이든간에 정의상 본질은 변하지 않는 무언가다. 우연적이고 역동적인 접합에 의해 구성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러한 고정적인 본질이 정치적 적대의 기준이 되면, 내 편은 '원래부터' 내 편이고, '앞으로도' 내 편이 된다. 따라서 이 정치적 본질주의는 개개인의 생물학적 특성이나 언행을 적대의 판단 준거로 삼는다. 자신(또는 내 편)이 좋아하는 정치인을 비판하는 이들, 자신(또는 내 편)이 비윤리적이라고 규정한 언행을 실천하는 이들, 또는 자신(또는 내 편)이 애초부터 될 수 없는 생물학적 또는 법적 지위를 가진 이들은 각각이 존재하는 맥락과 무관하게 오로지 배제, 타자화, 그리고 적대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정치적 본질주의는 본질적으로 동질적인 하나의 집단을 가정하고 그 집단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이것이 모든 정치적 집단주의의 작동 원리다.



2018.08.01







  1. "There is no such thing as society... only individuals and families." -Margaret Thatcher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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