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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헤게모니 개념 풀이

빨간도란쓰

라클라우·무페의 헤게모니 개념에 대한 정의다. 깔끔하고 유용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헤게모니 관계가 가능해지려면 실체들 사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 조건은 바로 특수한 사회세력이 근본적으로 자신과는 통약 불가능한 총체성의 대표를 자임하는 것이다.

-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샹탈 무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p. 12

정의에 따르면, 하나의 집단 안에서 누군가가 헤게모니를 잡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그 집단 안의 어느 특수한 세력이 집단 전체를 대표하려고 시도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찍먹파와 부먹파가 함께 중국집에 갈 때도 헤게모니 싸움이 있다. 부먹파는 이렇게 말한다. "찍먹은 탕수육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먹는 것이고 부먹을 해야 진짜 탕수육이다." 찍먹파는 이렇게 반박한다. "부먹하고 싶은 사람은 각자 그릇에 덜어서 부어 먹을 수 있으니 기본 규범을 찍먹으로 하자." 여기서 각각의 특수한 세력(부먹/찍먹)은 저마다의 논리로 자신의 세력을 정당화한다. 각각이 호소하는 제일원칙은 다르지만 ("진짜 탕수육 맛" vs. "각자의 방식을 선택할 자유") 공통점은 양쪽 모두 보편성을 자임한다는 것이다. 탕수육의 본질적 보편성이든, 취향 선택의 보편성이든.


여기서 핵심은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시도는 '통약불가능성'을 반드시 전제한다는 것이다. 대표가 되고자 하는 세력은 다른 세력과 상충하는 이익과 화해할 수 없는 입장들을 지닌다. 이 차이는 어떻게 해도 해소될 수 없는, 통약-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그 대표-되기를 희망하는 세력은 절대 '실제로' 모두를 대표할 수 없다. 이 대표성, 보편성은 라클라우·무페의 표현대로 오로지 '오염된 보편성'일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어느 정도 기만적일 수 밖에 없다.


라클라우·무페에게 오염된 헤게모니적 행위는 다름 아니라 정치적 행위의 근본 형식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정치를 한다'라고 하면, 그것은 곧 '헤게모니를 잡으려고 한다'는 뜻이라는 말이다. 결국 정치적 행위는 '특수한 세력이 전체를 대표하려고 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손에 잡히는 수많은 정치적 행위들이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특정한 세력의 대표자가 아닌 '국민의 대표자'로 여기는 것, 어느 당이 당명에 '국민'을 넣어 그들의 대표를 자처하는 것 등. 반드시 직접적으로 대표되는 모집단을 호명해야만 헤게모니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 '평화', '민주'와 같이 오늘날 보편적 가치라고 이해되는 단어나 개념들에 자기 세력의 입장들을 접합해 주장하는 것 역시 이런 운동의 일부인 것이다. '노동'이라는 단어를 주축으로 삼는 이들은 다름 아니라 '노동'을 '자유', '민주' 만큼이나 보편적 위치로 올려놓으려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헤게모니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상이한 입장을 지닌 주체들이 모인 집단에서는 이러한 헤게모니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국가에서도, 기업에서도, 군대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 가족과 같은 소규모 공동체에서도. 이 정치적(=오염된) 보편성의 추구에서 공적 정치가 개인주의적 윤리·도덕과 빗겨나가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8.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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