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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토요-광장시대

빨간도란쓰

삼십년 전이었다면 박근혜는 국회의 탄핵소추 심판까지 버틸 새 없이 사퇴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재작년, 그는 자기 발로 내려가기를 끝까지 거부했다. 결국 입법부와 사법부가 개입해야만 했다. 혹자는 2016-2017 탄핵 과정이 대한민국 제도정치의 선진성을 증명해준다고 평한다. 그러나 나는 박근혜를 사퇴시키는 공이 중앙정치의 몫으로 남겨진 이유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행동'이 일주일마다 한 번, 토요일에만 열렸기 때문이다.


1960년 4월 19일은 화요일이다. 1980년 5월 18일은 일요일이다. 1987년 6월 10일은 수요일이다. 사실 4·19, 5·18, 6·10이라는 날짜의 요일 자체가 중요하진 않다. 투쟁 과정에서 가장 기록할만한 하루를 정한 것일 뿐, 이 날짜들이 대표하는 투쟁이 며칠에 걸쳐 연속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회적 투쟁의 연속성은 동시에 사회적 기능의 불-연속성을 의미한다. 시위의 화염에 둘러쌓인 사회는 영속할 수 없다. 생산은 멈추고 경제활동은 마비되고 정치적 부담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쪽은 시간에 쫓긴다. 결국 시위대를 짓밟아버리는 무리수를 두거나(5·18), 끝내 굴복하고 권력을 내려놓을 수 밖에(4·19, 6·10) 없다.


반면 2016년의 광장은 일주일에 한 번씩만 열렸다. 주중에도 분노와 열기는 진동했지만 '국민행동'은 오직 토요일 뿐이었다. 결단을 요구하는 긴급한 상황은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변화를 향한 힘은 너무나도 '안전'하게 토요일마다 모였다가 흩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는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만일 제도권력이 제 일을 다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정권퇴진 시위가 계속 그 방식대로 이어졌다면, 박근혜는 임기를 채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장 2015년의 민중총궐기가 백남기 농민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흐지부지되고 오히려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의 구속으로 이어졌던걸 떠올려봐도 그렇다.


2016년의 정권 퇴진 운동은 결과적으로 성공했지만, 그 과정이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는 여전하다. 이제 그 어떤 광장도 오직 토요일에만 부르짖는다. 바야흐로 토요-광장시대다. 그토록 강력하고 밀도 있게 축적된 공분도 일주일에 한 번씩만 발현할 수 있는 사회. 시위를 나가더라도 주중에는 출근해야 하는 사회. 광장이 토요일에만 문을 여는 사회.


여느 모터가 그렇듯 시위에도 무한동력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힘을 모아내지 못하고 장기전으로 흘러가게 될수록 오히려 요구사항을 가진 이들이 시간에 쫓기기 시작한다. 타협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커지고, 구체적인 요구를 관철시키는데 모든 자원이 집중된다. 시간적, 질적 불연속성을 늘어뜨려 전혀 새로운 상상을 가능케 하는 진정한 의미의 단절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토요-광장시대가 갖는 정치적 함의다.


요즘도 토요일에 서울 도심을 지날 때면 몇십·몇백 명씩 모여 단상을 향해 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곳곳에서 본다. 덕수궁 앞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부끼고, 광화문 광장에는 빨간 머리띠를 두른 노동자들이 있다. 관광객과 나들이 나온 가족과 신호등에 걸린 자동차들은 잠시 멈춰서 시위를 구경하다가 이내 자리를 떠난다. 주말이 지나면 광장은 다시 조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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