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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에덴 동산 설화와 '원죄'의 의미

빨간도란쓰

[에세이] 도덕적 실재론, 회의주의, 그리고 실존주의적 윤리학 

링크한 위 에세이 중간에 '원죄'-라는 개념에 대한 내 이해를 아주 잠시 엿볼 수 있다. Moral conscience의 존재가 왜 '원죄'인지를 설명하려면 창세기의 에덴 동산 이야기에 대한 해석이 가미되어야 하기에 몇 문장만 덧붙인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쫓겨난 이유는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기 때문이다. 요새 한국 교회에선 아마도 금기를 깨부순 것 자체를 아담과 이브, 그리고 인류 전체의 '원죄'라고 여기는 듯하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행함으로써 하나님과 맞먹으려 했기 때문에 쫓겨난 것이며 이것이 인류가 현재의 상황에 처한 이유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조악한 해석이다.


'원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단서는 그 금단의 열매가 '금기'라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였다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후 발가벗은 자신들의 몸을 부끄러워하게 됐음을 떠올려보라. 이들이 자신의 알몸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바로 그들이 부끄러워할줄 아는 양심conscience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달리 말해, 선악과를 먹은 후 아담과 이브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윤리적 관념을 가진 도덕적 주체가 된 것이다. 선악과를 먹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는 양심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에덴 동산 라이프를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선과 악을 알게 된 이상, 마냥 쾌락만 추구하는 무념무상의 삶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이들은 에덴 동산에서 추방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에덴 동산으로부터의 추방 후 모든 인류가 '원죄Original Sin'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이야기하려면, 원죄 개념은 인간의 실존과 관련된 어떤 본질적 특성을 가리키고 있어야 한다. K-개신교적 입장에선 하나님과 맞먹으려는 오만이 그 본질적 특성이라고 설명하면 내적으로 정합적이긴 할테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태어나서부터 '하나님'이라는 기독교 유일신의 개념조차 모르고 죽는 사람이 태반인데, 이들 모두가 이 '하나님'을 넘어서려는 본능까지 가지고 있다니? 제도화된 기독교 도그마의 순환 논리를 벗어나는 순간 무너져버리고 마는 관점이다.


주장하건대 더 적절한 해석은, 바로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의식적인 존재로서 자신과 타인의 행동의 윤리성을 판가름할 수 있는 양심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내던져졌고, 이 양심이 바로 인간 존재의 '원죄'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각종 언행의 윤리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면서 살아가고, 또한 때로는 우리 자신도 우리의 윤리적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안다. 이런 의미에서 '죄'는 필연이고, '윤리적 경험'은 불가피하다. 또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갈등하고 반목하며, 때로는 화해하고 때로는 파멸한다. 인간 삶을 구성하는 근본적 지위에 놓인 자유, 의식, 그리고 윤리적 판단--바로 이것이 인류의 '원죄'인 것이다.


단지 하나의 경쟁하는 해석일 뿐이지만, 나는 위의 해석이 가장 타당하며 텍스트에 충실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정말 금기를 깨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게 원죄의 전부라면, 굳이 금단의 열매가 '선악과'여야 할 이유가 있는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굳이 자신의 알몸을 부끄러워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K-개신교 관점의 해석에선 이 요소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창세기를 그저 필요없는 우연한 디테일들을 양념처럼 뿌려놓은 형식적인 이야기로 격하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렴 인간 삶의 본질을 드러내주는 가이드가 아니던가. 이야기의 요소 하나하나가 빠짐 없이 하나의 진리를 엮어내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전제 위에서 이야기를 바라봐야만 비로소 그 진가를 발굴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원죄'를 윤리적 경험의 불가피성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에덴 동산 일화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빛나게 하는, 오히려 성경에 가장 우호적인 독해가 아닐까.



+2018.04.28 추가

K-개신교적 해석을 따르면, 원죄Original Sin에서 '원(Original)'이라는 글자는 '첫 번째'로 이해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죄 중의 원조-격 죄, 다시 말해 첫 번째 죄First Sin인 것이다. 대안적 해석은 이와 달리 죄의 근본적 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원'이라는 글자를 바라본다. 두 해석 중 어느 해석이 타당한가?


'첫 번째 죄'로 원죄를 이해할 경우, 인류는 아담과 이브의 죄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엄청난 곤경에 빠져버리고 만다. 우리가 지닌 그 원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 구원받아야 하고, 만일 구원받지 못하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아야 한다. 이는 다시 말해 곧 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다소 개인주의적인) 현대의 윤리관과는 화해할 수 없는 주장이 아닌가? 거칠게 말하면 연좌제를 연상케하는, 전근대적 관점에서만 타당한 해석이라고 감히 비판해본다.


허나 나 역시도 단순히 개인의 책임-묻기에 지나지 않는 개인주의적 윤리관의 손을 들어줄 생각은 없다. '양심으로서의 원죄' 해석이 어떻게 개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른 글에서 또 정리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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